싼야부리에 온 첫날 시장을 둘러봤을 때는 대충봐서 못 보았던 것인지 오늘 둘러본 시장 좌판에는 발이 묶인 큰 도마뱀도 있고 개구리도 있다. 한국에 있을 때 싼야부리 시장에 오면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박쥐와 각종 벌레들은 보지 못했어도 이 정도면 오늘 시장에 온 보람이 있다.
시장의 입구 근처에 마치 우리네 마늘 한 접의 모양처럼 대에 동그랗게 매달린 과일 여러개를 하나의 다발로 묶어놓고 파는 난전이 있었다. 다가가서 과일이름이 뭐냐고 묻자 아주머니가 무어라 대답을 했지만 기억이 잘 나지않는다. 아주머니가 과일 한 알을 맛보라고 나에게 건네준다. 앞에 있는 소녀를 따라 껍질을 벗기고 알맹이를 오물거리다 씨를 뱉어낸다. (여행의 중후반쯤 나는 이 과일이 '리치'라는 것을 알았다.) 곧이어 아줌마가 7,000kip(한화 약 1,050원)이라고 이야기를 하기에 머쓱하게 웃으며 "껍짜이(고맙습니다) 쏙디(행운을 빕니다)"하고 돌아선다. 미안해요, 아줌마, 식량을 벌써 많이 샀어요.
시장을 나와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려다 도로 근처를 돌아보니 역시 뚝뚝이 서있다. 가격을 알아볼 요량으로 뚝뚝기사에게 버스터미널까지 가는데 얼마냐고 물으니 20,000kip(한화 약 3,000원)이란다. 그렇구나 하고 그냥 돌아서는데 뚝뚝기사가 내가 가격을 마뜩잖아 한다고 느꼈는지 금세 10,000kip을 부른다. 뭐? 10,000kip? 이런, 10,000kip에 가능하단 말이지? 알았어. 근데 오늘 아니고 내일인데... 뚝뚝기사가 몇시냐고 묻는다. 아침 7시. 폰이 있냐고 묻는다. 없어요. 그러자 뚝뚝옆에 적힌 번호를 가리킨다. 내일 내가 이 자리로 올게요~ 낯선 곳에 혼자 떨어지면 마음도 불안하고 거리도 가늠할 수 없으니 부풀려진 가격을 그대로 주기 쉬운 것 같다. 여행의 말미에 가면 아마 뚝뚝기사랑 전문적으로 흥정하는 간 커진 여행자가 될 수 있으려나. 그나저나 어제 숙소에 있으면서 양만 많고 쉽게 원하는 말을 빨리 찾기 힘들었던 라오어인쇄물을 자주쓰는 말과 금액단위 위주로 뽑아 정리했더니 오늘은 숫자가 귀에 좀 들어오는 것 같다. 다행이다.
숙소에 돌아와 씻고 게스트하우스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뭔가 툭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가서보니 꼭지부분은 노랗고 나머지는 초록빛인 과일 한알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나무에 조롱조롱 달려 있다가 저혼자 떨어진 모양이다. 과일을 손에 들고 게스트하우스에 있는 학생에게 이것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 '막무엉(망고)'이라고 한다. 아하, 그렇구나. 아까 학교 매점에서 본 망고는 무척 길쭉하게 생겨서 다른 것인 줄 알았더니... 망고를 다시 나무 아래 가져다 놓으러 가는데 학생이 어느새 칼을 갖고와 건네준다. 엉? 그래, 먹는법도 잘 모르고 알았다하더라도 칼이 없어 늘 시장이나 리어카 좌판 앞에서 머뭇거리기만 했는데... 잘됐다 싶어 망고를 씻어서 껍질을 깎는다. 겉은 푸릇푸릇한데 속은 노랗고 달달하다. 비엔티안에서 무심코 들어간 학교에서 망고를 처음 먹었을 때도 그랬지만 망고는 맛있긴해도 딱딱한 씨부분이 너무 커 크기에 비해 손실이 많은 과일이라 아쉽다.
바깥 거리와 넓은 게스트하우스의 영역을 희미하게 구분하는 담장의 어느 한편에 세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오토바이 앞의 남자, 그 옆의 여자, 그리고 여자의 품에 평온하게 안겨 있는 아기.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 우연히 마주하게 된 일상의 장면에서 나는 순간 눈을 뗄 수 없었다. 아름다웠다. 조금의 이지러짐도 없이 그대로 하나의 완전한 모습처럼 느껴졌다. 너무나 아름다워 가슴 한켠이 뭉클해지면서 눈물이 난다. 가족이 오토바이를 타고 떠난다. 너무나 흔하지만 가장 아름답고 그 자체로 완벽한 장면이 눈앞에서 점점이 멀어져갔다. 여행의 순간에 대하는 일상의 미(美)가 내 마음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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