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시계를 들여다 볼 때마다 한국은 지금쯤 몇시인가를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겠지 하고 상상한다. 무언가 내 발목을 잡는 것들, 나를 망설이게 하는 것들을 벗어나 보고 싶었다. 여행에만 오롯이 전념하게 될 줄 알았는데 혼자일수록, 외로울수록 그들의 크기는 내 마음 속에서 커져간다. 알람으로 맞춰둔 형의 음성을 듣는다. 나를 지지해주는 그들이 고맙다.
어제도 낮 잠깐을 제외하고 종일 비가 내리더니 오늘 아침도 계속 비가 내린다. 하루 정도 숙소에서 여정을 정리하는 것도 나쁘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몸이 쳐지는 것 같고 움직이는 게 귀찮고 게을러 지는 것 같다. 씻고나서 오늘은 비 좀 맞으며 믿따팝 중학교를 둘러보고 시장에도 들러 요깃거리를 사와야겠다.
싼야부리에서 3박 4일간 묵었던 toutou게스트하우스 전면.
샤워를 하고 게스트하우스 현관 벤치에 앉아 있다. 출근이나 등교하는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계속 지나간다. 한창 등교시간인 것 같아 학교를 지금 방문하기엔 좀 이를 것 같다. 30분 정도 책이나 읽다 어슬렁 어슬렁 가봐야겠다. toutou게스트하우스에 묵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처음 보여준 방이 아닌 별채에. 침대 머리맡의 커튼을 치면 창밖으로 오가는 사람을 구경할 수 있다. 어제 종일 숙소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으면서도 날씨의 변화도 보고 사람도 볼 수 있어 덜 답답했는지도 모른다. 이 게스트하우스는 정말 넓다. 주차되어있는 차도 4,5대 정도 되고 곳곳에 화초와 나무가 많아 싱그럽다. 다들 가족인지, 직원인진 모르겠지만 할머니부터 학생까지 사람들도 많다. 보기에 매우 풍족한 집인 듯하다.
내가 묵었던 게스트하우스 별채
별채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비가 내려 온세상이 촉촉하다.
욕망이 멈추는 나라, 느림의 나라, 시속 4km의 행복 등 지난 몇 년간 내가 꿈꾸고 갈망하던 라오스의 이미지. 우리나라의 7,80년대 모습과 비슷하다고 들어왔던 터라 조용한 시골의 모습을 생각했는데 비엔티안에서의 그 많은 신형차들을 봤을 때의 생경함. 시골마을이라는 이곳 싼야부리까지 빈부의 차는 점점 커져만 가는 듯하다. 급속한 경제개발로 인한 자본주의화까지도 닮아가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아침에 게스트하우스에 있는 학생에게 뚝뚝을 타고 여기서 정류장까지 가는데 얼마냐고 물었더니 10,000(약 1,500원)에서 20,000kip정도라고 한다. 역시나... 여긴 시장에서도 한참 더 떨어진 곳인데, 정류장에서 시장까지 30,000kip에 오다니. 잘 사는 나라에서 온 여행자에게 그 정도야 상관없을 것이라 생각했는지도 모르고, 나 역시 바가지에 버뺀양, 버뺀양(괜찮아요)하며 모르는 척 눈감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도 쉽게 떠날 수 있는 여행자는 아니었다. 적게 일하고 적게 벌고, 적게 쓰고 싶은 괴롭고 게으른 인간은 불필요한 소비를 억제하려 노력할 수밖에 없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말을 이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싼야부리 믿따팝중학교 교실 외관
도로를 지나는 학생들 무리가 잦아들 무렵 믿따팝중학교로 향했다. 지난 토요일엔 조용하기만 하던 학교인데 오늘은 학생들이 꽉 들어차있다. 몇몇 교실은 수업중인 것 같은데 또 어떤 교실은 뛰어다니는 아이들도 있고 소란스럽다. 교문을 들어서며 운동장에 있는 여학생에게 여기 한국사람이 있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한다. 토요일에 만났던 학생들은 여기 학생이 아니었나 보다. 아쉽다. 운동장 안으로 들어설 때부터 아이들이 창밖으로 나를 쳐다본다. 교실 근처로 다가서려다 수업에 방해될까 한국에서 지원하여 지었다는 강당쪽으로 가본다.
한국이나 라오스에서나 수업중 학생이 나와서 문제를 푸는 건 익숙한 광경이다
라오스를 꿈꾸던 몇 년전부터, 그리고 여행을 준비하면서 시중에 나온 라오스여행책은 거의 다 읽었는데 2년간 코이카요원으로 싼야부리에서 행정지원을 수행한 이영란(썰리펀)씨의 책을 통해 믿따팝중학교도 알게 되었다. 책을 통해 이미 나에겐 얼굴이 익숙한 한 선생님에게 강당 안을 둘러봐도 괜찮겠냐고 물었더니 괜찮다고 한다. 안에 앉아있는 선생님에게도 인사하고 한바퀴 둘러본다. 다른 선생님에게 여기 한국사람이 있냐고 물었더니 있다고 하는 것 같아 반색을 하다가 다시 들어보니 3명이 있었다는 이야기인 듯하다. 벽에 붙어있는 학교 행사사진을 가리키며 ‘까올리(한국인)’하길래 내가 ‘썰리펀’이라고 말하자 선생님이 맞다고 하면서 다른 한국사람 이름도 말해준다. 사실 책을 통해 알 뿐이지 개인적인 친분은 없는데...
다른 여자선생님 한 분이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라오말로 뭐라고 하는데 아마 이젠 다 잊어서 기억이 안난다고 하는 듯하다. 이영란씨가 학교선생님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쳐주었다고 책에서 본 기억이 난다. 또 다른 선생님이 영어로 말을 걸어온다. 오~ 책에서 본 얼굴이 낯익다. 영어선생님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한다. 반가워라. 썰리펀이 쓴 책에서 당신을 봤다고 하니 다른 곳으로 들어가더니 이영란씨가 쓴 책을 가지고 온다. 책을 펼쳐보고 그 선생님의 ‘껠리껀’이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껠리껀은 내가 혼자 여행하고 있다고 하자 자신은 여행을 못하는 처지라고 말을 한다. 내가 껠리껀도 할 수 있다고 했더니 돈이 없다고 했던가, 많이 든다고 했던가. 그래 아무리 벼르고 별러 떠나온 가난한 여행자라 할지라도 당신과 비교하면 나는 부자나라에서 온 여행자일 것이다. 용기를 준다고 한 말이 되려 그녀를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염려스럽다.
강당건물과 그 2층에 위치한 컴퓨터실의 모든 집기는 한국에서 지원하여 마련한 것이다.
업무를 보고 있는 껠리껀선생님.
위층에 한국에서 지원해준 컴퓨터실이 있다고 볼 생각이 있는지 묻길래 좋다고 말하고 따라 올라갔다. 컴퓨터실엔 LCD모니터와 스캐너, 프린트, 빔프로젝트까지 잘 갖춰져 있다. 학생들은 1주일에 1번, 컴퓨터수업을 하고, 인터넷은 선생님 컴퓨터에만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껠리컨이 무언가를 영어로 묻는데 1년 정도 이곳에 자원봉사자로 올 생각이 있는지 물었던 것도 같은데 무슨 소리인지 잘 몰라 버벅거리며 문법에 안 맞는 단어만 나열하다 조용해진다. 아, 룬이랑 술리냐와 대화할 땐 그래도 괜찮았는데 영어공부 좀 할 걸... 대화가 서먹해지자 껠리컨이 컴퓨터 앞에서 서류를 확인하며 자기 할 일을 한다. 궁금한 게 있으면 본인에게 물어보라고 하긴 하는데 궁금한 게 있어도 물어볼 수가 없다. 껠리컨은 문서 일을 하고 나는 조용히 멀뚱거리며 앉아있다 종이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끄적끄적 안되는 영어로 몇자 적어본다.
(나는 라오스를 좋아한다. 오래전부터 라오스여행을 꿈꿔왔었다. 라오스는 느림의 나라라고 생각한다. 한국사람들은 매우 바쁘다. 노동시간이 매우 많다. 하지만 라오스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나는 라오스가 가진 전통과 고유함이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껠리컨에게 학교를 좀 더 둘러보고 오겠다고 말하며 메모를 건네주고 컴퓨터실을 나왔다.
컴퓨터실의 라오어 자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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