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야부리 시장, 한국의 시골장을 떠올리게 한다.
라오스는 불교의 나라라 정숙해야한다는 생각에 배낭 속에 챙겨온 바지는 모두 긴바지뿐. 반바지는 지금 입고 있는 한 개가 전부다. 숙소에서 편하게 입을 반바지를 하나 살까 싶어 시장 옷가게 앞에서 바지하나를 가리켜 값을 물어보니 30,000kip(약 4,500원)이라고 한다. 비싸다 싶어 주저하고 있으니 주인이 황당하게 쳐다보는 눈치다. 소심소심. 앞쪽에 얇은 천으로 된 체육복 반바지가 있어서 이건 얼마냐고 물으니 15,000kip. 낙찰이다. 좌판에서 군고구마와 구운 바나나를 섞어 5,000kip어치를 사고, 오이와 토마토를 섞어 1kg- 10,000kip어치를 사서 숙소로 걸어오는데 한 켠에 소란스러운 소리가 난다.
문위삭카무삭이라는 싼야부리의 행사. 온 마을사람이 다 모인 것처럼 보이는 북적거리는 행사장. 어른, 아이할 것없이 화려한 꽃장식을 들고 서 있다.
스님, 교복입은 학생, 할머니들이 뒤섞여 모여있다. 잔치같아 보여서 한 할머니에게 ‘낀동(결혼식)’이냐고 물으니 맞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내가 못 알아들은 건지 나도 모르겠다. 근처에 가보니 스님들이 뭔가 진행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돈을 꽂아 화려하고 삐죽하게 만든 화환같은 걸 들고 앉아있다. 교복입은 학생들이 있어 낀동이냐고 물으니 또 모르는 눈치. 믿따팝 학생이냐고 물으니 맞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나에게 한국인이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했더니 자기 학교에 한국인 선생님이 있다고 한다. 김세환이라던가 태권도선생님이라고 하길래 지금 이 자리에 있냐고 물으니 모르겠단다. 그 중에 눈치빠른 한 여학생이 지금하는 잔치가 '문위삭 카무삭(Bouvisakabosa)'이라고 말해주며 영어철자까지 내 종이에 적어준다. 큰 운동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빠져나가더니 곧 대열을 이루어 행진을 한다. 카메라맨도 있고 경찰통제도 하는 걸 보니 제법 큰 행사인 듯 하다.
한 곳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대거 이동을 시작한다. 스님들을 선두로 줄을 지어 싼야부리 거리를 행진한다.
서서 구경을 하는 것도 잠시 다시 숙소를 찾아가는 발걸음이 힘겹다. 숙소에 들어와 입고 있던 옷을 빨고 있자니 얼마 안 있어 빗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오후 3시도 안 됐는데... 그래도 늘 숙소로 돌아오고나면 비가 내리니 절묘한 타이밍이 고맙다. 고구마를 먹으면서 방에 있는 TV를 켜니 한 채널에 한국 가요프로그램이 나온다. 신기하긴 했지만 별로 보고싶은 생각이 없어 곧 TV를 껐다. 오늘은 토요일, 내일도 공휴일인 일요일. 학교에는 여전히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학교도 좀 둘러보고 한국인 선생님이 있는지도 알아보고 싶은데...
시장에서 사온 군바나나와 군고구마. 다 먹고 싶은 걸 꾹 참고 일부 아껴두었던 고구마는 다음날 비닐 안에서 개미들과 뒹굴고 있었다.
비엔티안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이 싼야부리는 왜 가느냐고 의아해해도 그렇게 오고 싶던 곳이었는데 라오스 사람들이 먹는 신기한 먹거리가 다 모여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시장도 기대에는 못미치고 거리는 오토바이와 자전거만 지날 뿐, 걸어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다. 싼야부리 시장엔 산 다람쥐와 박쥐, 식용벌레도 있다고 들었는데 아침에 가야 볼 수 있는 걸까. 월요엘 아침에 싼야부리를 떠날 것인가, 아니면 월요일에 학교를 둘러보고 화요일 아침에 루앙프라방으로 떠날 것인가 고민된다. 그렇다면 일요일인 내일은 그냥 숙소에서 뒹굴거리며 책이나 읽고 편하게 지내볼까도 싶다.
어두운 밤, 자려고 누웠다가 머리맡의 커튼을 잠시 젖혀본다. 하늘에 보름달이 떠있다. 맞다, 오늘이 보름이구나. 어제 비엔티안에서 스님 룬이 보름날에는 머리를 깎는다면서 그게 내일이라고 했었지. 달은 어디서나 똑같은 모습이다. 사랑하는 사람들 생각이 난다. 내가 보고 있는 저 달을 엄마도, 형도 보겠지. 나는 무엇 때문에 이곳에서 이러고 있는지...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알려고 그러는 걸까. 룬과 술리냐를 만나고 오는 버스 안에서 문득 생각했었다. 여행 초반인데도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고마운데 앞으로 여행 기간이 길게 남았으니 좋은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면 룬과 술리냐의 소중함이 옅어져 가진 않을까 걱정하며 그러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이곳에선 외롭다. 사람하는 사람들이 그립다. 앞으로 닥쳐올 여행의 여정들, 내가 잘해낼 수 있을까 두렵고, 피하고 싶다. 이왕 떠나온 거 그렇게 오고 싶어 벼르던 곳, 아쉬움, 두려움, 걱정, 막막함을 버리고 애초의 계획대로 나가보자. 이보다 여행이 짧은 기간이었다면 무언가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아쉬움이 남아 다시 안달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시도하지 않으면 만나지 못하게 될 그 무수한 인연과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알게 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다. 어떻게든 되겠지. 여기도 사람사는 곳이다. 미리 두려워 말자. 어디든 길은 있다.
굉장한 빗소리에 잠을 깬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간, 말리려고 밖에 내 놓았던 샌들을 안으로 갖고 들어온다. 다시 잠을 청한다.
태권도장에는 공놀이를 하고 있는 라오스 아이들이 있었다.
아침 비는 좀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내리고 있다. 모처럼 10시간은 잔 것 같다. 세수를 하고 물을 먹고 음식을 먹고 글을 쓰다 또 잠든다. 숙소벽을 돌아다니는 도마뱀은 꼭 새소리를 낸다. 딱따구리 같기도 하고 참새소리 같기도 하고... 다행히 무섭지는 않다. 일단 월요일까지는 이곳에 있어보고 판단하자.
종일 침대에서 뒹굴뒹굴이다. 글쓰다 말다, 글쓰다 자다, 글쓰다 멍하니 선풍기 돌아가는 걸 보며 생각한다. 창밖으로 풀이 있고 지나다니는 사람이 보여 좋다. 햇살이 쨍하니 나갈 엄두가 안나고, 다니다 비라도 내릴까 나갈 엄두가 안 난다. 땡구르르 게으르게 있으니 그냥 핑계만 생기고 더 게을러진다.
'낯설게 보기 > 2012_라오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2_싼야부리[10] (0) | 2013.06.20 |
---|---|
2012_싼야부리[09] (0) | 2013.06.11 |
2012_싼야부리[07] (0) | 2013.06.04 |
2012_비엔티안→싼야부리[06] (0) | 2013.06.03 |
2012_비엔티안→싼야부리[05] (0) | 2013.06.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