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타는 곳 안으로 들어가니 버스자리마다 벽면에 행선지 이름이 영어로 잘 부착되어 있다. 싼야부리행 버스에는 벌써 사람들이 타고 있고 버스 위와 짐칸에 짐을 싣는 것인지 사람들이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짐을 체크하고 있다. 내 배낭도 저기 올려야되는 건가 싶어 그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영어로 말을 걸어온다. 내 배낭도 저기 실어야 되냐고 하니 그냥 가지고 타라고 한다.
버스 안에 들어가보니 짐칸에 좌석번호가 매겨져 있다. 앉아가는 사람만 짐을 넣을 수 있는 건가 싶어 고민이 된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배낭까지 바닥에 두고 15시간을 가려면 힘들 것 같은데... 싼야부리행 버스 앞의 터미널 의자에 앉았다. 고등학생 정도 되어보이는 남자애가 옆에 있길래 라오말로 “너 싼야부리 가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싼야부리 간다”고 묻지도 않은 말을 답한다. 싼야부리가는 버스가 맞구나. 이제야 마음이 좀 놓인다.
비엔티안 북부정류장에서 발권한 싼야부리행 버스표. 나는 48번 플라스틱좌석을 배정받았다.
출발하기까지 1시간 정도 남았으니 메모나 끼적일까 싶어 노트를 펴들고 글을 몇 자 쓰고 있으니 내 옆에 다른 젊은 남자가 앉는다. 그에게 아까 내가 말을 건 옆에 있는 남자들을 가리키며 친구들이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한다. 영어를 할 줄 아냐고 물었더니 조금 할 줄 안다고 한다. 반가워라.
동독국립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23살 술리냐는 리포트를 쓰기 위해 외할머니가 있는 싼야부리로 간다고 했다. 자기도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면서 내가 노트에 쓴 한국어를 들여다본다. 이건 막 날려쓴거라 알아보기 힘들텐데...
"의사, 간호사, 학교, 선생님..." 술리냐는 자기가 아는 한국어 단어를 말한다. 우와~ 제법이다. “너 잘한다.”하고 칭찬해준다. 라오스에서 영어도, 한국어도 아는 사람을 만나니 더욱 반갑다.
술리냐가 어느 좌석이냐고 묻길래 나는 좌석표를 보여주며 늦게와서 플라스틱의자를 배정받았다고 했다. 출발시간이 다 되어가는지 타자고 하길래 일단 버스에 올라갔는데 플라스틱의자는 아직 배치 전이다. 운전사에게 좌석표를 보여주니 내가 외국인이라 그런지 난감해하는 눈치다. 버스차장같은 사람에게 표를 보여주니 운전사 옆 보조석에 앉으라고 한다. 사람들은 계속 오르내리고 어떻게 하면 될지 난감해서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는데 술리냐가 자기 자리에 와서 앉으라고 한다. 손사래를 치며 나는 계속 거절을 한다. 내가 늦어서 그런 것을 술리냐가 나 때문에 플라스틱의자에 앉다니 안될 일이다. 술리냐는 자기가 공부하는 한국어교재와 노트를 나에게 보여주며 같이 한국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면서 자기 자리에 앉으라고 강하게 이야기한다. 난감하고 미안해하며 술리냐의 22번 자리에 앉았다. “술리냐, 가다가 자리를 바꾸자.”
내 오른쪽 좌석에 앉은 왜소한 모습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린다. 내 왼쪽 복도엔 플라스틱 의자에 앉은 술리냐. 직원이 올라와 다시한번 버스표 검사를 하고 오후 6시 10분쯤 버스가 떠난다. 6시 30분 출발이라고 해놓고는...
네 군데 정도 빈자리가 있는데도 사람들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간다. 이상하다. 나 같으면 저기 빈자리에 가서 앉을 것 같은데...
16시간 동안 나를 대신해 플라스틱의자에 앉아갔던 술리냐. 싼야부리에서 조금은 밋밋한 시간을 보냈다 하더라도 그를 만날 기회가 있었던 것만으로 싼야부리행을 선택한 가치는 충분했다.
술리냐가 내 나이를 묻고 나서는 25이나 26살인 줄 알았다며 어려보인다고 말해준다. 고마워, 술리냐. 나이가 들수록 어려보인다는 말은 땡큐다. 차 안에서 글자를 보면 멀미를 하는 체질이지만 나를 위해 자리를 내어준 술리냐에 대한 예의와 고마움을 느끼며 술리냐와 한국어 책을 보며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한 시간 전에 먹은 가루멀미약의 효능을 믿어보는 수밖에...
술리냐는 함께 한국어공부를 하고 있다는 21살의 스님, 우돔싹에게 전화를 걸더니 나랑 통화를 하라고 바꿔준다. 한국에 가고 싶다는 우돔싹에게 왜 한국에 가고 싶냐고 물으니 모르겠다고 답한다. 최대한 쉬운 한국말로 또박또박 천천히 말하려 하긴 했는데 가고 싶은 이유를 모르는 건지, 못 알아들은 것인지...
버스가 가다가 선다. 밖을 내다보니 시장같아 보이는데 버스창문을 사이에 두고 사람들이 생수, 바게트, 전화카드 등의 물건을 구매한다. 술리냐도 긴 바게트 4,5개가 들어있는 묶음 하나를 산다. 그건 얼마냐고 물으니 20,000kip(약 3,000원). 싸긴한데 양이 너무 많군. 가다가 버스가 또 선다. 새로운 사람들이 버스에 타고 빈자리가 메어진다. 예약된 빈자리였나보다. 이래서 빈자리가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앉지 않은 거였구나. 차가 가다 또 선다. 또 시장. 사람들이 또 창을 사이로 열심히 물건과 돈을 교환한다. 출발하다 또 선다. 이번엔 쌀 포대와 큰 짐이 버스통로로 들어온다. 사이사이에 플라스틱 의자가 또 놓여지고 사람들이 더 탄다. 미안한 마음에 술리냐에게 자리를 바꾸자고 했더니 괜찮다고 한다. 술리냐에게 네가 피곤해지면 꼭 자리를 바꾸자고 당부를 한다.
버스 차장이 의자와 의자사이를 곡예하듯 넘어 뒤로 오더니 몇몇 사람에게 노란 봉지를 나눠준다. 멀미용 봉지인 것같은데 나도 받을까하다 만다. 괜찮겠지, 뭐... 어두워지는 와중에도 술리냐와 폰으로 빛을 비춰가며 서로 못 알아들은 영어와 한국어를 적어가며 이야기를 나눈다. 또 차가 선다. 왜 또 차가 서는지 어리둥절해 하는 나에게 술리냐가 용변을 위해서 라고 말해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밤, 수풀들이 울창한 곳이다. 불편해서 그런지 여자들은 잘 안 내리고 주로 남자들이 내려 볼일을 본다. 자연이 곧 화장실이다. 버스가 이동하는 동안 사람들이 중간 중간 승차하고, 시장을 4번쯤 들리고, 용변보라고 3번, 밥먹으라고 식당 앞에 1번을 들리니, 정말 15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싼야부리정보센터 앞에서 찍은 싼야부리 안내지도. 싼야부리는 다른 도시에 비해 소문난 관광지가 없는 시골마을이라 관광객도 적고 그만큼 지도나 안내서를 찾기가 어렵다.
통로에 끼여 앉은 사람들은 옆좌석에 기대기도 하고 한쪽 다리를 다른 좌석 사이에 깊숙이 넣고 있기도 한데 좌석에 앉은 사람들은 전혀 괴이치 않는다. 우리나라 같으면 불편하다고 옆사람에게 싫은 소리 한번쯤 했을 법도 한데 말이다.
술리냐 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있던 사람이 멀미를 한다. 계속된 멀미로 힘들어하자 술리냐가 필통에서 약 한알을 꺼내 그 사람에게 건네준다. 새로 탄 사람들은 자리가 좁아 거의 서서간다. 가방을 손에 들고 서있는 한 아저씨에게 가방을 달라고 했다. 생각보다 가방이 많이 무거워 앉아가는데도 다리가 편하지 않다. 좌석을 바꿔준 술리냐는 더 불편할텐데 이것쯤이야...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같은 밤, 버스가 한 식당 앞에 멈춘다. 밥을 먹을 사람들은 버스에서 내려 식당 안으로 들어가고 나는 그냥 버스에 앉아 있었다. 술리냐는 갑자기 생각난 듯 가방 안에서 주섬주섬 밥과 고기반찬이 든 비닐봉지를 꺼내어 나에게 먹어보라고 내민다. 내 손이 더러운 것 같아 물수건을 꺼내 닦을까도 생각했지만 왠지 그러긴 뭐해 그대로 손을 내민다. 나는 고기를 먹지않는다고 말하고 밥만 떼어 꼭꼭 씹어 먹는다. 딱딱한 밥이 미안했는지 술리냐가 자기가 산 바게트를 가리키며 빵을 먹을 건지 물어오길래 나는 고개를 저으며 밥이 맛있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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