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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게 보기/2012_라오스

2012_루앙프라방[19]

 

피곤하고 몽롱해 2시간쯤 자고 일어났다. 누워서 책을 보는데 마침 가져온 책이 틱낫한의 '평화로움'. 어제 G가 했던 말이 생각나 명상을 시도해본다. 침대 위에 앉아 호흡에 집중해본다. 들이쉬고 내쉬고, '이루다'는 말이 영어로 뭐였더라... 들이쉬고, 해는 몇시쯤 질까... 내쉬고, 내일은 몇시쯤 떠나면 되지... 도무지 호흡에 집중이 안된다. 삼십분을 온갖 잡념과 함께 호흡하다 다시 침대에 걸터앉아 명상을 시도해본다. 또 십분, 그냥 일어나서 스트레칭도 하고 숙소 안을 이리저리 걸어본다. 갑자기 바람이 많이 분다. 해지는 광경을 보러 푸시산에 올라가려 했는데 곧 비가 몰아칠 것 같다. 어찌됐든 방안에 있는 것보단 시원할 것 같아 1층 로비로 나오니 타로가 기타줄을 튕기고 있다. 특정 곡목이 아니라 그냥 자유롭게 연주하는 듯 보였는데 기타의 3번줄이 끊어져 있다. 네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한다. 짐은 무조건 최소한으로 싸려고 애쓰는 나에게 악기는 거추장스러운 것이었는데... 멋있다, 타로.

 

 

결국 소나기가 몰아친다. 잠시 밖에 앉아있다 모기에게 5방을 물렸다. 2층 방으로 물파스를 가지러 가는데 그새 일본 여자애 1명과 타로는 2층 응접실에 앉아있는 2명의 서양인 사이에 앉아 붙임성있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각자 앉아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는 서양아이들에게 방해가 될까 나는 그저 조심하게 지나만 다닐 뿐인데 일본여자아이의 붙임성이 얼마나 좋은지 애교가 철철 넘친다. 시끌벅적한 웃음과 말소리에 나는 갑자기 더욱 혼자가 된 느낌이다. 늘 나를 따라다니는 소심함은 언제나 다른 이가 다가오기를 기다리게 할 뿐이다. 마침 비가 그치고, 나는 우산을 챙겨들고 푸시산을 향한다. 여행 중에 근력이 좀 생긴 줄 알았더니 계단 몇 개에 숨이 차오른다. 내려오는 외국인에게 여기가 푸시산이 맞냐고 물으니 자기는 모르겠단다. 매표티켓을 끊는 아주머니에게 푸시임을 확인하고 입장료 20,000kip(당시 한화 약3,000원)을 내고 올라간다. 저 멀리 계단에서 도모요가 내려온다. 비가 오는 와중에도 열심히 돌아다녔나 보다. 이곳을 언제 떠나느냐고 물었더니 내일 아침 방비엥으로 간다고 한다. "나도 내일 아침 떠나." 도모요와 인사를 하고 계단을 계속 오른다.

 

 

꼭대기에 다다르자 루앙프라방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작은 법당이 있기에 들어가 절하고 향과 초를 피우

고 나왔다. 다른 계단이 또 있어서 가볼까 했더니 반대쪽 거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벤치에 앉아 전경을 본다. 구름이 많아 원하던 일몰광경은 보기 힘들 듯 하지만 그래도 구름의 모양이 장관이다. 이곳에서 이런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나혼자만 보고 가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가족들을 떠올린다. 옆 벤치 커플은 자꾸 뽀뽀를 하고 이놈의 모기는 자꾸 나를 문다. 혼자인 것도 서러운데 사람 차별하냐, 이 모기야. 혹시나 선명한 일몰을 볼 수 있을까 싶어 한참을 서성이다 노을이 보이는 난간에 걸터앉는다. 태양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고 어렴풋한 붉은색 기운만 감돈다. 그렇게 또 한참을 앉아있다 해가 지기 전 산을 내려온다. 구체적인 윤곽없이 어렴풋한 어떤 것만으로 실재한다고 믿으며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이 내겐 없나보다.

 

 

저녁을 먹고 내일 먹을 요깃거리도 사고 마지막으로 야시장을 구경할 겸 길을 나선다. 아까 푸시를 올라가기 전에 시사방봉 사이에 위치한 마이사원을 눈여겨보았던 터라 살짝 들어가본다. 마침 스님들의 경전외는 소리가 들려 법당 뒷자리에 꿇어앉는다. 앞쪽에 노스님이 앉아계시고 다같이 큰소리로 경전을 외는데 뒷자리에 앉은 꼬마스님은 지루한지 자꾸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오후 6시, 야시장거리엔 벌써 좌판을 준비하고 있다. 고구마를 살까, 밥을 살까 고민하는 중에 과일봉지를 들고가는 외국인을 보자 갑자기 과일이 먹고 싶어진다. 과일은 무게때문에 가지고 이동하기가 불편하다 싶으면서도 지금 먹고 싶은 것을 어쩌랴. 그나마 먹기 편한 사과를 가리키며 가격을 묻는다. 1kg에 15,000kip. 옆집에 가서 물으니 1kg에 12,000kip. 10,000kip어치만 달라고 해서 작은 사과 7개가 담긴 봉지를 들고 시사방봉 야시장으로 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잠이 부족한 탓인지 피곤해서 구경거리가 눈에 잘 안들어온다. 내가 시장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한국에서도 중심가 거리보단 재래시장이 더 편하고 즐거웠다. 바로 가면 빠를 길을 시장구경을 하기 위해 일부러 늘 돌아가기도 했었다. 일주일간 혼자 자전거여행을 다녔을 때도 그건 각 지역 시장투어나 다름없었다. 그런 내가 시장을 처삼촌 벌초하듯 그까이꺼 대충 둘러보다니...쩝. 그 순간 눈에 확 들어오는 광경 하나. 야시장 좌판에 상인인 듯한 엄마가 꼬마 여자아이와 놀아주는 모습. 그저 엄마가 손만 대도 아이는 까르르 넘어간다. 그 모습이 참 아름다워 마음이 찡해진다. 저토록 평범하고 단순한 행복을 이 먼 곳까지 와서 자꾸 떠올리게 되는 것. 내가 사람이 많이 그리운가 보다.

 

며칠 동안 '그 자리'를 지킨다는 것,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저 사람들이 열심히 살고 있는지,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평범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살고 있다. 나는 내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부단히 발버둥쳐 왔는데 평범하게 내 자리를 지키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 자리가 어디(무엇)인지는 내가 또 만들고 풀어야 할 숙제겠지만 돌아가면 내 자리를 지켜야겠다. 루앙프라방에서의 마지막 밤은 이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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