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4시 30분, 맞춰놓은 폰알람이 울린다. 어젯밤에 한 시간 이상을 누운 채로 도통 잠들지 못했다. 내가 묵는 2층 방 앞에는 탁자가 놓여있는 작은 응접실 공간이 있는데 이 공간과 방 사이에는 빛이 거의 투과될 정도의 나무판자로 그저 구획만 지어놓았을 뿐이니 방음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구조였다. 밤 12시가 되도록 서양 여자 둘과 남자 둘이 큰소리로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냥 잠들자하고 한 시간을 누워서 이리뒤척 저리뒤척 하다가 결국 일어나서 문을 열었다. "Excuse me. Very sorry. Can you keep it down? I'm going to get up in the early morning. Sorry." 용기를 내긴 했지만 민망한 마음에 빨리 문을 닫고 들어왔는데 알아들은 듯 하더니 서양남자 둘은 그 뒤로도 30분이 넘게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계속 한다. Korean... 어쩌고 저쩌고 하더니... 자기들끼리 웃는 소리. 그래, 그냥 자자.
아직은 캄캄한 새벽, 창문을 여니 달이 떠 있다. 그새 많이 이지러졌구나. 늦게 잔 것치고는 몸이 개운한 것 같아 세수를 하고 길을 나서본다. 거리로 나서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먹거리를 들고 나에게 다가오는 상인들. 탁발체험용 음식을 판매하려는 것이다. 아직 탁발은 시작 전인 것 같아 아침시장쪽으로 간다. 오전 5시 30분, 벌써 장이 섰다. 사람들은 부지런히 장사를 준비하고 있다. 탁발을 보고 돌아오는 길엔 먹을거리를 좀 사야겠다. 개가 짖으면서 따라오기에 무서워했더니 한 할아버지가 거리를 쓸던 빗자루로 개를 쫓아주는데 되려 옆에 서 있던 내가 등짝을 맞는다.
관광안내소 앞 거리로 나가니 멀리서 일련의 스님들이 줄을 지어 걸어온다. 꿇어앉아 정성스레 스님에게 음식을 바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옆에서 통을 들고 기웃거리는 거리의 아이들. 스님들은 사람들에게서 받은 음식을 다시 그 아이들의 통 안에 나누어준다. 생각보다 스님행렬도 길지않고 음식을 나누어 주는 사람들도 많지는 않다. 루앙프라방에는 사원이 많아 그만큼 스님들도 많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각자 자기들의 구역이 있는 것인지 생각보다 간소한 행렬이다. 관광객들 중에는 나처럼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고 직접 음식을 사서 탁발의식에 참여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한 서양 여자애는 김이 모락모락나는 밥을 스님들에게 선 채로 나누어주고 있다. 절 앞에 붙여놓은 안내문에는 여자는 앉아서, 남자는 서서 참여하라고 되어있던데 말을 해줄까 머뭇거리다 괜한 오지랖인가 싶어 돌아선다.
짧은 탁발행렬을 보고 다시 아침시장으로 향한다. 과일, 채소, 생선, 고기, 도너츠 등 종류도 다양하다. 싼야부리 시장에서 보기를 기대했던 식용벌레들을 오히려 관광도시인 이곳에서 만난다. 독수리도 있고, 작은 새도 있고, 개구리도 있다. 지나가다 아주머니가 작은 과일 알맹이같은 걸 손으로 하나씩 떼어내고 있는 모습을 보았었는데 오늘 가까이서 보니 그게 과일이 아니라 애벌레의 고치였다. 이리저리 한바퀴 둘러보다 반찬난전으로 간다. 6, 7가지 반찬이 대야에 담겨 있다. "커이 낀 테 팍(저는 채소만 먹어요), 버 아오 씬(고기 필요없어요)"하며 손으로 반찬을 가리켰더니 아줌마가 고개를 젓는다. 다 고기반찬이라는 의미인 듯하다. 맞은편 반찬집에 가서 다시 물어본다. 청년이 반찬 하나를 가리킨다. "No 씬?" "뱀부" 아하, 죽순! 손등에 국물 몇 방울을 떨어뜨려 맛을 보고는 주문을 한다. 죽순반찬 한 봉지에 5,000kip(한화 약 750원). 밥은 같이 팔지 않는다는 청년. 옆집 아주머니가 나에게 맞은 편 집을 가리킨다. 다시 맞은편 집에 가서 밥 한봉지를 3,000kip에 사고 시장 한 바퀴를 더 둘러본다. 잠이 부족한 것인지 허기가 져서 그런지 정신이 좀 몽롱하다.
1,000kip짜리 작은 도너츠 2개를 더 사서 숙소로 돌아온다. 메모지와 음식을 챙겨 테라스로 나오는데 게스트하우스 주인아줌마가 나를 부른다. 아줌마에게 가니 그릇 하나와 숟가락을 챙겨준다. 오, 센스쟁이 아줌마, 컵짜이 라이라이~(정말 고마워요). 안 그래도 한국에서 밀폐용기같은 걸 챙겨올까 하다 괜히 부피만 더할 것 같아 젓가락만 챙겨왔는데 라오스에는 국물요리가 많다. 밥 위에 죽순반찬을 부어 배를 채운다. 모처럼 제대로 먹는 밥, 저녁에도 밥을 사서 남은 반찬과 함께 먹어야 겠다.
'낯설게 보기 > 2012_라오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2_루앙프라방[20] (0) | 2014.03.14 |
---|---|
2012_루앙프라방[19] (0) | 2014.03.13 |
2012_루앙프라방[17] (0) | 2014.03.10 |
2012_루앙프라방[16] (0) | 2014.03.10 |
2012_루앙프라방[15] (0) | 2014.0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