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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게 보기/2012_라오스

2012_농끼에우[31]

농끼에우 버스정류장 매표소

 

중간 중간 라오스사람들이 대부분 내리고 농끼에우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는 서양인을 포함한 관광객 6,7명이 전부였다. 터미널로 가서 창문에 붙어있는 지명과 가격을 살펴보니 다음 목적지로 계획한 '쌈느아'가 보이지 않는다. 매표소 직원에서 물으니 매일 오후 12시 30분에 출발하고 농끼에우에서 쌈느아까지 11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따로 적혀있지 않으니 긴가민가하면서도 재차 확인을 하려니 귀찮게 하는 것 같아 메모만 하고 돌아선다. 그나저나 드디어 올 것이 왔다. 거의 자정에 도착예정이라니. 지금까지는 미리 시간을 체크해서 되도록 낮에 도착예정인 출발시간을 골라 움직여왔는데 이번엔 차편이 하나밖에 없으니 꼼짝없이 밤에 떨어지게 생겼다. 그래도 루앙프라방이나 다른 곳으로 또 가고 싶진 않으니 지금으로선 계획대로 진행해나갈까 생각 중이다. 쌈느아에 내려서 터미널에 숙소가 있으면 거기서 하루 묵고, 없다면... 정류장에서 날이 밝을 때까지 노숙을 해야겠다.

 

옆에 있는 서양인이 밴기사와 이야기를 하더니 다른 서양인들에게 게스트하우스 밀집지역까지 한 사람당 5,000kip(당시 한화 750원)에 데려다준다고 같이 갈 것인지 묻는다. 지도에 거리표시도 없어 급한 마음에 쌈느아 시간만 확인하고 나도 그들과 함께 밴에 올라탄다. 차로 5분쯤 달렸을까, 한 다리 앞에 내려준다. 갑자기 미지의 세계에 던져진 것처럼 마음이 불안해진다. 다리 양쪽으로 흐르는 강과 깎아지른 바위산들, 멋지다. 하지만 풍경을 즐길 새도 없이 우선 숙소를 구해야 한다. 거리의 음식점마다 앉아있는 서양인들을 보니 여기도 이미 관광지화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농끼에우에서 이 다리를 보게된다면 게스트하우스가 밀집된 지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리 위에서 바라본 강의 전경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게스트하우스들의 모습

 

첫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가보니 기존에 묵었던 게스트하우스들과는 다른 형태의 가옥이다. 나무로 지은 지상가옥인데 방밖의 베란다에는 해먹이 걸려있고 거기서 강과 산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구조다. 발을 디딜 때마다 삐거덕 소리가 나고 나무바닥틈새로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여 조금은 불안하다. 몇 군데의 게스트하우스를 더 돌아봐도 다들 비슷한 구조다. 비싼 곳은 하루 100,000kip짜리도 있고 보통 하루 50,000kip 정도. 선풍기와 온수가 가능한 것이 공통인데 몇몇 곳의 화장실에는 변기에 물내리는 버튼이 없고 바가지로 물을 붓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발품을 팔아 하루 40,000kip짜리를 이틀 이상 묵는 조건으로 하루 30,000kip에 협상하고 '뱀부 파라다이스 게스트하우스' 2번 방에 짐을 푼다. 독립된 형식의 지상 나무가옥으로 여기도 베란다에 해먹이 걸려 있다.

 

농끼에우에서 내가 묵은 2번 방

 

뱀부 파라다이스 게스트하우스의 정원, 해가 지고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나는 방 안보다 이곳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가까운 시장도 여기서 5시간 이상 떨어져 있다고 하니 여기선 그냥 레스토랑 밥을 사먹으며 해먹에 누워 가끔 강을 바라보다 책을 읽으며 말그대로 휴가를 즐기러 온 셈치고 며칠을 보내야겠다. 예상보다 저렴하게 방을 구했으니 밥값으로 대체하는 수밖에... 아쌍이 포장해 준 밥이 걱정돼 열어보니 아니나다를까 더운 날씨에 채소와 밥이 폭삭 상했다. 아깝다. 더운 날씨에 옷이 땀에 젖었다. 동네지리도 확인할 겸 일단 한바퀴 돌고 와서 씻을까 싶어 숙소를 나오는데 숙소에 붙어 있는 식당에서 주인아들이 컴퓨터를 하고 있다. 혹시나 싶어 폰을 켜니 wifi신호가 잡힌다.

 

숙소 주인에게 가서 wifi 비밀번호를 체크하고 반가운 마음에 형에게 전화를 건다. 형의 목소리를 듣는데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인터넷을 쓸 수 없었던 우돔싸이에서는 연락에 구애되는 일도 없고 예상 밖의 즐거운 경험을 많이 했었기에, 농끼에우로 오는 차안에서 이제는 나도 여행에 익숙해진 건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기대도 하지 않았던 시골마을에서 무선인터넷이 가능해지자 나는 또 그리운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다. 따뜻한 목소리에 내 마음이 약해진 것일까, 아니면 위로받고 싶어 더 응석을 부리게 되는 것일까. 그렇게 울고 웃으며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다시 동네를 둘러보기 위해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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